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
감독은 호누르 잔자이다. 구리 탄환(Chipolopolo)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한때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축구 강국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잠비아 축구의 전설적인 선수 칼루샤 브왈랴(Kalusha Bwalya)의 해트트릭으로 이탈리아를 4-0으로 이기기도 했다. 비록 메달권에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참고로 아프리카 나라로 올림픽 축구 메달을 처음 받은 건 1992년 가나가 동메달을 받은 것이다.
이후 1994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압도적인 모습으로 승승장구하며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듯 했으나... 1993년 4월 27일, 선수단이 세네갈 원정을 위해 세네갈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이동하던 중 가봉의 리브르빌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선수단 및 탑승자 30명 전원 사망'''.[3][4] 이 사고 원인 파악조차도 여태껏 안되고 있다..[5]
선수들을 잃어버린 이 사고로 말미암아 모로코가 운이 좋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잠비아 축구는 몰락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잠비아 국대의 얼마 없는 해외파였던 칼루샤 브왈랴는 당시 합류하지 않아서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6] 그러나 그 이후로도 여전히 아프리카에선 다크호스로 인정받는 팀이다.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드록신의 코트디부아르를 꺾고 우승까지 하기도.[7]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최종예선도 오르지 못했다. 월드컵 8강, 올림픽 동메달, U-17,20월드컵 우승같이 화려한 성적을 낸 가나와 같은 조에서 만난 게 불운이지만 그래도 가나와 1승 1패(1-2,1-0)를 주고 받으며 선전했다. 그러나 약체인 레소토에게 원정 1-1, 수단에게 안방에서 1-1로 비긴게 타격이 커서 3승 2무 1패, 조 2위로 일찌감치 2차예선에서 탈락했다.(당연히 가나가 1위로 최종예선 진출)
과거 참사도 있고, 아프리카 대륙 챔피언도 지낸 최근의 역사도 있어서, 항상 월드컵 본선을 경험하지 못한 국가 중 가장 강한 국가를 선정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팀이기도 하다. 최근엔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13년 정점을 찍고 점점 전력이 쇠퇴하는 안타까운 팀 중 하나. 찰리 무손다 같은 특급 유망주는 유럽에게 뺏기고, 스토피라 순주, 크리스토퍼 카통고, 제임스 차망가 등의 황금세대와 에녹 음웨푸, 팟슨 다카 같은 20대 초반 유망주 사이의 중간 세대가 뚜렷하지 못해 전력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인근 국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리그에 선수들이 많이 진출해있어 10명 내외의 국대급 선수들이 남아공 리그에서 뛰고 있다. 아프리카 프로팀 중 강호급인 콩고 DR의 수퍼클럽 TP 마젬베에도 2명의 잠비아 국가대표가 현재 활약중이다.
국내파 선수들의 대부분의 소속팀은 ZESCO 유나이티드 라는 팀인데 잠비아에선 가장 성공한 클럽이고, 아프리카 대회에도 여러번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이다.
한국과의 역대전적은 2승 2패로 백중세. 2010년 남아공에서 가진 친선경기에서 한국에게 4:2 승리를 거두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12년 다시 친선경기를 가졌고, 이근호가 두 골을 넣어 한국이 2:1로 승리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MAFAO이다.
2. 역대전적
2.1. FIFA 월드컵
2.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역대 순위 : 6위'''
[1] 영어[2] 아프리카 선수 역대 A매치 최다 득점이다.[3] 이 사고로 인해 국민적 축구 영웅이었던 고드프리 치탈루(Godfrey Chitalu) 감독, 알렉스 촐라(Alex Chola) 코치, 데이비드 차발라(David Chabala) 등이 사망했다.[4]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고드프리 치탈루는 현역시절 A매치 111경기 79골을 뽑아낸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로 치탈루의 A매치 골 기록은 2020년 현재까지도 아프리카 선수 역대 A매치 최다득점 1위에 랭크되어있다. 그런 국가적 영웅 아래 첫 월드컵 꿈을 키워가던 팀에게 너무나 비극적인 사고가 터진 것이다.[5] 일단 가장 유력하게 추정되는 원인은 기내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엔진에 붙은 불을 진화하는 데 실패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6] 당시 소속팀인 PSV 아인트호벤의 경기 때문에 합류가 늦어졌다.[7] 우연찮게도 우승한 장소가 가봉의 리브르빌이다. 1993년 자국 대표팀의 비행기 추락 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 곳.[8]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9] 본선 진출 횟수. 독립 이후로 계산